[칼럼] 함께(Together)

 

좋은 동료가 있고, 좋은 가족이 있고, 좋은 이웃이 있어 여정을 함께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함께”라는 말을 가만히 속삭여 보세요. 왠지 기분 좋은 엔돌핀이 마구 솟는 느낌이 들지 않나요? 그런데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함께란 어떤 함께를 말하는 것일까요? “내가 왼쪽 어깨를 맡을 테니 너는 오른쪽 어깨를 받혀라”라는 기대가 섞인 함께가 아닐까요? 내가 감당하는 역량만큼 상대방에게도 그만한 역량을 기대하는 함께 말입니다. 만일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의미가 나의 전적인 희생이나 일방적인 도움을 수반하는 것이라면 우리는 그때도 누군가와 함께할 수 있을까요? 진정한 함께란 상대방에게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을 때도 함께하는 것이라고 쉽게 말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함께라는 말에는 분명 상대방의 부족을 내가 메우겠다는 다짐과 각오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척박한 날 중에서 그래도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는 건 어쩌면 누군가의 슬픔과 고통과 부족함을 메우는 함께함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얼마 전 진정한 함께함이란 무엇인지를 보여준 父子(부자)의 감동적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온 몸이 마비되어 겨우 입만 놀릴 수 있는 극심한 장애를 가지고 태어난 아이가 있었습니다. 평생을 휠체어에 앉아 의사소통도 제대로 할 수 없는 모습으로 태어났지만 아이는 부모로부터 극진한 사랑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아이의 유일한 의사표현은 입에 물린 막대를 이용하여 컴퓨터 자판을 찍는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게 15년의 세월이 흐른 어느 날 아이는 컴퓨터에 “나는 달리고 싶다”라는 문장을 적습니다. 머리 아래로 온몸이 마비된 아들의 소망을 읽은 아버지는 그 불가능의 메시지를 무시하지 않았고, “얘야 너는 달릴 수 없단다.”라고 아들을 설득하지도 않았습니다. 오직 아이와 함께 달리겠다는 결심 아래 다니던 직장마저 그만 두고 아이와 함께 단축 마라톤에 출전할 것을 결심합니다. 아이를 휠체어에 태우고 함께 달린 그들의 첫 번째 레이스가 끝나고 아들은 컴퓨터에 “처음으로 장애를 잊을 수 있었다”라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 메시지를 시작으로 부자(父子)는 보스턴 마라톤 연속 완주 24회라는 기록과 함께 60여 차례나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해 냅니다. 하지만 장애아들은 마라톤에 만족하지 않았고 다시 컴퓨터에 “철인 3종 경기에 나가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깁니다.

 

그 메시지를 받은 아버지는 주변의 온갖 반대에도 불구하고 철인 3종 경기에 나갈 것을 결심합니다. 단 한번도 배워보지 못한 수영을 배우고, 6살 이후 타보지 못한 자전거를 연습하여 마침내 철인 3종 경기에 출전합니다. 아버지는 커다란 고무보트에 아들을 태우고 그 고무보트를 끈에 연결하여 가슴에 묶은 다음 3.9km를 헤엄쳤습니다. 혼자서도 힘겨운 길을 무거운 보트를 가슴에 걸고 물살을 헤쳐 나가는 아버지. 그리고 다시 사이클 앞에 휠체어를 달아 아들을 태우고 180.2km를 달린 다음, 그 휠체어와 함께 마라톤 풀코스를 뛰어 마침내 결승선을 통과합니다. 결승선을 통과할 때 아들은 말할 수 없이 행복한 표정으로 겨우 몸을 가누어 엄지손가락을 치켜 세웁니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아이를 위해 아버지는 끝없이 헤엄치고, 자전거 페달을 밟고, 마라톤 풀코스를 완주하며 자신이 가진 온 힘을 다하여 아이에게 성취감을 심어 주었습니다. 제 힘을 다하여 아들을 사랑한 아버지의 이름은 딕(Dick) 그리고 그의 아들이름 릭(Rick).

세상은 쓸모없다고 인정하지 않는 아들을 위해 “네가 있었기에 나는 달릴 수 있었다”고 말하는 아버지의 레이스는 사랑이 무엇인지, 함께함이란 무엇인지를 소리 없이 웅변해 줍니다. 그들의 달리기는 “함께, Together”라는 이름으로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고 합니다.

세상에서 뛰어난 자녀와 부모를 자랑스러워하며, 그들이 이뤄낸 성과에 기쁨과 행복을 느끼는 것이 인지상정이지만, 어디에선가는 정상적이지 않은 자녀나 부모에게 어깨를 내어주며 기꺼이 함께하는 작은 영웅들이 있습니다. 그 열악함을 원망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묵묵히 동반하는 그 숭고한 마음을 느낀 적이 있나요? 모두가 자식 자랑에 침이 마를 때 자랑할 것 하나 없는 자식의 쓸쓸한 손을 붙잡고 말없이 더운 사랑을 베푸는 부모를 본 적이 있나요? 혹시 길을 걷다가 지체장애아의 손을 꼭 붙잡고 가는 어머니를 보신 적이 있다면 잠시 멈춰 서서 경의를 표해 주세요. 자식 사랑의 꿈을 접은지 오래된 그 무너진 가슴이 어쩌면 냉랭한 내 가슴보다 고귀하고 위대하다는 사실에 숙연한 미소를 지어 주세요. 그 진정한 함께에 희망의 박수를 보내 주십시오. 그때 우리 또한 또 하나의 보이지 않는 사랑의 동행자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인 시설을 혐오시설이라 하여 자기 동네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메마른 정서와 집값 떨어진다는 얄팍한 이악스러움으로 거부하는 헐벗은 심성으로는 이 땅에 진정한 함께를 다시는 볼 수 없을 겁니다. 누군가의 날갯짓을 기대하는 함께가 아니라 지쳐 쓰러진 날개에 내 날개를 얹혀주는 동행의 아름다움이야말로 진정 사람의 아름다움입니다.

YLCer 여러분들의 함께는 어떤 함께인가요? 혹시 내가 한만큼 상대방에게도 그만함을 기대가 섞인 함께는 아니였나요? 이 팀호이트(Team Hoyt)를 보면서 저는 이런 함께를 생각하고 있었던 것 아니었나 생각해 보았습니다. 저는 이제부터 딕의 함께 같은 함께를 실천하리라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들도 저와 함께 하시지 않겠습니까?

 

-이정곤 언론사업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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